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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중 l 제393호 l 2018년 07월 30일 l 조회수:42
    간판스케치 - 성수동 카페 거리


    낡았지만 트렌디한… 고유의 간판 문화 볼만

    한국의 브루클린…낡은 봉제공장들이 멋진 카페로 변신
    지저분한 외벽을 가리기보다 공존 모색한 간판들과 함께 인기

    서울 지하철 성수역 3번 출구. 낡고 투박한 공장들 사이로 트렌디한 문화 공간과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동네. 바로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며 요즘 가장 뜬다는 거리, 서울 성수동이다. ‘자그마치’, ‘대림창고’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유명 카페들이 이곳에 몰려 있다. 하지만 처음 이 거리를 찾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찾아온 건지 의문이 든다. 공장 외부는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밖에서 쉽게 분간해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간판도 마치 공장의 일부인 양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난다는 점이다. 분명 카페를 오픈하면서 새로 설치한 것일 텐데, 공장과 함께 수십년 풍상을 겪어온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흔히 건물의 외관이 지저분할 때 점주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서 더러운 외벽을 가리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수동의 점포들은 벽을 가리는 대신, 공장의 낡은 외관에 어우러지는 느낌의 간판을 다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간판마저 사랑받는 색다른 거리가 된 것이다. 뚝도시장 방향으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성수동의 명소인 ‘대림창고 갤러리 컬럼’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정미소로 지어진 이곳은 1990년부터 20년 넘게 물류창고로 쓰여왔다. 대림창고도 그때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후 2011년 몇몇 젊은 예술가들이 인수, 리모델링된 이곳은 문화 무풍지대였던 성수동을 '예술의 거리'로 만든 주인공이다.

    간판은 붉은 벽돌 위에 투박한 글씨체로 적힌 ‘사무실’이란 글자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이 ‘사무실’ 안에서 은은한 커피향이 풍기고, 희미하게 음악 소리도 들려온다. 겉은 공장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다 간판마저 이러니 모르는 사람들은 공장이 여전히 운영중인가 하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바로 옆 블록엔 카페 겸 조명갤러리 ‘자그마치’도 비슷한 모습이다. 인쇄소로 쓰던 공장 내부만 살짝 리모델링한데다 같은 건물 3·4층엔 여전히 단추 등 패션 액세서리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간판마저 흔히 보는 세련된 카페간판과는 거리가 멀어 카페로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성수동의 가게들은 대부분 이처럼 빈 공장을 활용해 작업실 겸 가게로 쓰고 있다. 공장의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옛 주인이 버리고 간 기계들과 오래된 간판마저 디자인 소품으로 활용한다. 옛스러움에 예술 감각이 더해진 성수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감성이다.

    한편, 성수동이 이처럼 문화거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되레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제조업 붐이 일었던 1970년대 땅값이 저렴했던 이 지역은 구두와 봉제공장들이 잔뜩 들어섰는데, 우리나라 방직업의 황금기가 저물면서 성수동도 함께 저물어 갔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수제화 산업도 저가 제품에 밀려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수제화 거리에도 듬성듬성 빈 가게들이 생겨나게 됐다. 성동구는 성수동의 낙후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도심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성수동 일대를 서울시 도시재생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신청했다. 이른바 성수동 골목상권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

    특히 재개발 등 전면 철거형 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지역 특성을 고려해 보존과 관리 위주의 지원사업이 진행됐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수제화 거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수제화 산업 전 분야를 지원했고, 수제화 장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유치하기 위해 임대료도 낮췄다. 이 때 성수동을 찾은 건 수제화 산업 종사자들만이 아니었다. 비싼 땅값의 홍대, 대학로에서 밀려나 갈 곳을 잃은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성수동을 찾은 것. 성수동 카페거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성수동 사람들은 이런 골목길의 화려한 변신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성수동 골목이 인기를 얻자 부동산 투자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까닭이다. 묵묵히 수십 년을 인쇄 공장에서, 금속 공장에서, 수제화 공방에서 일해 온 터주대감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공장을 카페로 만들겠다는 건물 주인에게 내쫓긴 세입자도 많다. 성동구는 부랴부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도 만들었지만 돈의 힘을 버텨내기는 버거워 보인다. 낡고 허름한 그대로의 모습과 새 것의 적절한 조화, 과거와 현재의 사이좋은 공존으로 사랑받던 성수동도 결국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성수동은 브루클린의 미래와 닮지 않기를 고대해 본다.

    신한중 기자[ⓒ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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